분당선 열차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분당선 열차 정보

분당선 열차

본문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네모난 트럭에 실린 공산품 마냥 사람들이 끌려오고 있다. 오전 8시를 조금 넘은 시간 분당선은 인간종합선물세트다. 가지각색 사람들, 누군가는 정장을 빼어입고 청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고 검은 구두 흰 운동화 빨간 하이힐 모습도 가지가지지만 삶이라는 그물에 덜컥 걸려 허우적거리는 몸뚱이에 억지로 불어넣은 희망이라는 속임수에 넘어가 그물이라는 것도 잊은체 팔딱거리는 모습은 너나 할것 없이 매한가지다.

문이 열린다.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 도떼기시장보다 복잡하고 한증막보다 답답한 한줌 여유도 없어 보이는 공간을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나간다. 누군가는 팔로 밀고 가방에 치이며 삐끗한 하이힐에 휘청이기도 하고 키작은 여인네는 키큰 남정네의 품에 꽉 눌린 체 본의 아니게 서로의 체취를 교환한다.

수원까지 지하철이 뚫린 이후로, 출근 시간에도 비교적 한산한 맛이 있었던 분당선은 신도림을 지나는 2호선 열차만큼이나 혼잡해졌고 목적지가 머니만큼 혼잡의 끝도 머나멀기만 하다.

누군가의 가방에 짓눌린채 생각한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키가 큰가. 나는 안 크고 무얼 했나. 이 한증막 속에서도 네 녀석은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있겠지. 나는 약품 처리한 인조가죽냄새 그리고 후끈 올라오는 열기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인데.

문득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쌩판 모르는 사람들과 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인생이라는 시스템을 지탱하는 톱니바퀴가 궤도를 이탈하여 돌아야할 아귀가 잘못 맞은 것은 아닐까. 쌩판 모르는 사람들이 지하철을 매개로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트럭이 멈추기 전까지 그리고 가득 짓눌린 공산품들의 으악스러운 하역이 하나둘 끝나기 전까지는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는 제법 동료들이라는 것이다. 감정 없는 짜증 나는 쓸데없이 덩치 크고 가방만 멘 공산품 동료들이다.

하역이 끝나고 제 자리를 찾아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면 원래 우리는 같은 공산품이었다는 것도 잊고 치고 박고 부리고 부림당하겠지. 누군가는 콧대를 세우고 누군가는 고개를 조아리겠지. 우리는 같은 공산품이었다는 것도 잊고...

이번역은 3호선으로 갈아타실 수 있는 도곡, 도곡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이제 나도 첫번째 하역장으로 보내질 차례다. 잡념을 지운다. 곧 올라야 할 계단이 떠오른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들여본다. 한칸 오른다.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결론 기름값이고 주차고 뭐고 걍 차 끌고 다닐까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ㅠㅠ
추천
0

댓글 23개

치고받는 그 공산품들속의
그 여인네의 향기가 그립다..

아 내일도 이 향기에 이끌려
가겠구나...ZZ
지운아빠님이나 다른 재미진 회원님들 글을보며 저는 이런생각을 하죠

애들입이 찰지구나.. 옳다구나 좋다야~

당신의 애들입에 깊은 찬사를~ 제정신을 다시 차리게 되면 돌아오겠습니다.
분당선..서해안 고속도로..비내리는 호남선~ 완행 열차에..
농담 쌈치기..인줄 알앗습니다..

지운아빠님에 글을 정독하면서 느껴 보았습니다..
귀절 귀절이..
詩 입니다
진지한..
저도 한때는 트럭사서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는게 꿈이었습니다..
수필2

이 번 글은 다른 수필에 비해 재밌네요.
인생사 새옹지마, 일장춘몽 이라... 사람 사는 것이 그렇고 그러한데
집에 있는 햄스터 쳇바퀴를 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귀여움 보단 내 인생을 비추는 것 같아 아련한 마음까지 든다.
꾸준히 글쓰는 연습 중입니다. 머리 속의 것을 끄집어 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서요.
일장춘몽이라는 말이 참 뭐랄까 아련하지만 알 것도 같고 그렇네요.
전체 195,374 |RSS
자유게시판 내용 검색

회원로그인

(주)에스아이알소프트 / 대표:홍석명 / (06211)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 707-34 한신인터밸리24 서관 1404호 / E-Mail: admin@sir.kr
사업자등록번호: 217-81-36347 / 통신판매업신고번호:2014-서울강남-02098호 / 개인정보보호책임자:김민섭(minsup@sir.kr)
© SIRSOFT